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부족들의 탈레반 지지 === >카불에 본부를 둔 전쟁평화연구소의 설립자인 타밈 아세이 전 아프간 국방차관은 이를 ‘두 개의 세계관이 벌이는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쪽에는 보다 진보적이고 온건하며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농촌 사람들과 접촉해 본 적 없이 성장한 아프간 도시인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카불의 엘리트들이 운영하는 중앙집권적 국가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보수적인 아프간 시골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문제는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탈레반보다 조금 덜하다 뿐이지 대부분 [[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고, 부족 간에 강약은 다르지만 전통적으로 촌락의 [[닫힌 사회]]를 중심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지리적인 요건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나마 이동이 편한 대도시는 소련의 지배 및 이전 중앙아시아 다른 지역의 영향을 받아 좀 개방이 된 편이지만 다수 지역이 이렇다. 김혜자가 쓴 <꽃으로 때리지마라>를 보면 미군이 아프간 산지를 둘러보다가 정말로 오랫동안 이방인이 오지 않은 마을까지 발견했는데 명예살인은 기본이고 그야말로 꽉 막힌 지역이라서 이방인이 그 마을 여자에게 말만 걸었다하면 즉시 여자나 이방인인 미군이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였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아연 소년들>이란 책에는 소련군 일행이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근교의 마을에 한 집에 들어갔는데 들어간 집 사람들은 파슈툰왈리[* [[접대의 관습|유목민 특유의 접대의 문화]] 및 가족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여러 가지 풍습을 포함한 관습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차와 음식을 접대하였고, 소련군 일행이 차와 음식을 먹고 나오니 마을 내 다른 주민들이 그 소련군 일행을 접대한 집으로 쳐들어가 집 안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모조리 돌로 때려 죽였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파슈툰왈리의 기준으로 집안에서 외부인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성인 남자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손님 접대가 정 필요하다면 여성과 아이들은 집 어딘가에 숨어있고, 남성들만 접대를 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외부인에게 노출되면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거라고 의심하고 죽이는데, 보통 파슈툰인들끼리는 그래서 주인이 미리 집안 내 출입구역을 정해주고 손님은 그 구역 내에서만 움직이는 식으로 접촉을 피한다. 이 사례는 집주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소련군이 아무 생각없이 여성들의 거주지에 들어가는 바람에 터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부족들이 적어도 탈레반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탈레반이 폭정을 저지를 때는 과부들이 구걸이나 매춘 외에는 경제활동이 완전 금지당하고 남자라도 수염을 깎거나 할 경우에는 최대 사형에 처하는 막장짓거리 때문에 탈레반에 대한 민심 이반이 일어났지만, 탈레반 붕괴 이후에도 지방 유력자들의 부정부패는 그대로라서 현지 주민들이 체념 상태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반면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입지가 흔들리자 부족들은 미국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탈레반이라고 해서 문제를 해결해주느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미군은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탈레반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중들은 더러워도 탈레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 서술하듯이 전쟁 초반 미군이 압도적 전력을 바탕으로 탈레반을 몰아낼 당시 민중들이 좋아하고 죽은 탈레반 시체를 매달고 모욕을 가했던 걸 생각하면 아프간 민중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이라크 전쟁]] 때도 똑같았다. 여기서도 미군을 환영하고 후세인 동상을 부수고 그림을 태우며 사람들은 시원해했지만 길어지는 전쟁과 덩달아 당하는 테러 피해, 게다가 미군의 행패 및 갈등으로 인하여 이라크 전쟁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반미적으로 돌아섰듯이 아프가니스탄도 다를 게 없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던 시절 폭정은 상상을 넘어섰다. 당장 [[탈레반]] 문서만 봐도 극단주의자들이나 지지했지, 탈레반 정권 시기 대다수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탈레반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웃어도 처벌하던 놈들이었고 일반인들은 선풍기를 못 쓰게 해놓고 탈레반 간부들은 축사에 선풍기를 설치한다든가 대중문화 자체를 싸그리 금지하며, 면도해도 죽이고(!) 연날리기까지 알라의 하늘을 모독한다며 연날리던 아이들을 구타해 죽이며 축구를 금지해서 거리에서 축구공을 찼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화염방사기로 학살했으며 축구경기장을 사형장으로 쓰던 놈들이었다. 아프간인들도 미군이 쳐들어와 탈레반을 일시적으로 몰아낼 당시 미군을 환영하고 보란듯이 그동안 꼭꼭 숨겨오던 영화나 음반들을 꺼내 팔고 속시원해하던 반응을 보였다. 즉 주민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미국이 최소한 처음처럼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투자하고, 아프가니스탄에 20만 이상의 대군을 투입해 탈레반 와해를 노력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으리라 보는 분석이 많다. 적어도 미군과 갈등으로 일부 테러라든지 충돌을 피할 수 없어도 탈레반이 박살난 상황에서 '지금이 낫다, 적어도 미군이 행패나 피해가 있을지언정 탈레반보다 엄청나게 낫다'는 인식이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시기에 이라크 전쟁을 벌여서 탈레반을 부활시킨 미국이 이 부분에서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